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왕랑이 나쁜 넘으로 희생된 이유





이상은 금토 本 三國志 11권(관직사전·인명사전 - 리동혁 저)에서 발췌.

왕랑(王朗, ?(162. 삼국지11에서 설정된 출생년) ~ 228) : 변형 인물. 위 대신. 자는 경흥(景興).
동해 담현(지금의 산둥성 관내) 사람. 경전에 밝아 낭중이 되었다가 치구장, 회계 태수를 맡았다. 손책과 싸우다가 져서
항복했는데, 얼마 지나지 않아 조조가 조정으로 불러 간의대부로 임명해 승상의 군사에 참여시켰다. 조조의 봉국 위나라가
선 뒤 군제주가 되어 위군 태수를 겸했고, 소부, 봉상, 대리를 역임했다. 220년부터는 위의 어사대부, 사공, 사도 등 높은 벼슬을
하다가 228년에 죽었다. 박식하고 재주가 많았는데 작품은 거의 다 없어졌다.≪삼국지≫ 13권 <왕랑전>, ≪자치통감≫ 60·62·
69·71권. 소설에서는 227년 싸움터에서 제갈량과 말싸움을 하다 욕을 먹고 분해 죽는데, 그 나이가 76세라 한다.
왕랑의 손녀가 사마소의 아내가 되어 진무제 사마염을 낳았다. 그러므로 왕랑은 욕을 먹는 과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.



흠.. 그렇군.
뭐, 어쨌든 사마의는 73세로 당시 평균 수명으로 따지면, 오래 살았지만..
그의 자손들은 비록 위를 멸망시킨 다음, 진을 세워 권력을 오래토록 누리려 했으나,
모두 다 오래 살지 못함. 한을 탈환한 조비도 마찬가지고..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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